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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잡담 1974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콩쿠르의 1위없는 2위 수상.. 1위는 있었다.
  • 칸타타2017-12-21 11:16:22조회 122추천수 2댓글 2

  •  [ 이제는 말해야 한다 ]

    1974년 피아니스트 정명훈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콩쿠르 1위 없는 2위 입상' 소식은 경제든 문화든..
    뭣하나 내세울 것 없이 초라했던 당시의 한국민들에게는 희소식 이었겠지요.
    이에 정명훈을 공항에서부터 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등 그 당시 대대적인 환영 행사가 이루어 졌다는 것은 클덕(클래식 덕후)들 이라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조성진이 당시에 태어났더라면 분명 카퍼레이드 그 이상을 했을것입니다만 최근에 한국인의 국제 음악제 수상 소식은 수상자들이 너무 많은 관계로 희소가치가 떨어지는 현실 입니다.
    2011년 동대회에서 똑같이 2위를 수상한 손열음역시 특별한 행사는 없었으니 말이죠.







    그런데 74년의 차이콥스키 콩쿨에서 '1위가 없는 2위 수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 1위는 바로 모스크바 태생으로, 여러번 우리나라에서 내한공연을 하고 있기도 한 피아니스트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였던 것 입니다.


    • *앞줄가운데가 수상직후의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오른쪽이 '정명훈'  (이미지 구굴검색)



      *위키피아에서 검색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역대 수상자 리스트

     

    • 당시 직접 카퍼레이드 행사를 기획했던 현,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은 한 일간지 칼럼에서 당시의 '1위 없는 2위 수상'  내용이 잘못됐다며 정정 했습니다. 거의 40년이 지나서 인 것이죠.

      그러면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이 당연히 따라오게 되는데 이종덕 사장이나 그 당사자인 정명훈씨나  정명화,정경화 자매분들도 지금껏 사실을 시원하게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는,,
      인터넷이나 SNS는 당연히 없었고 각국의 주요 신문을 파우치라는 보따리에 담아 비행기로, 긴급 전달사항은 텔렉스 라는장치로 전송받던 시절 (FAX도 당시엔 없었을겁니다) 이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국내 언론사의 보도만을 진실이라 믿고 접할수 밖에 없었 상황 이었습니다.
    • 배경을 추측해보면..
      적성국가인 소련으로부터 날아온 낭보에 ‘1위는 없는걸로 하고 2위를 부각시키자’는 모종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그 소식에 사람들은 '쏘련놈들이 지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정명훈을 1위가 없는 2위로 처리 한 것이다'며 억울해 했다고 들어 왔습니다.
    • 비록 조작된 희소식 이었지만 진실을 몰랐던 당시의 시민들은 모두가 자기의 일처럼 기뻐했겠지요.
    • 전쟁의 후유증으로부터 겨우 벗어나 밥술이나 먹고 살게됐던 팍팍한 70년대에 한줄기 빛처럼 전해진 희소식이었기 때문 이었을 겁니다.

      이제 수많은 세월이 지나 진실이 희석 되었다지만 정명훈 본인을 비롯 당시의 관계자들 모두는 이제라도 진실을 솔직히 시인 해야 할때가 아닌가 싶네요.
      정명훈 본인이 그것을 시인한다해서 그분이 세계음악계에 쌓은 명성과 업적이 물거품이 되거나 폄하 될일은 없다고 생각 됩니다.
    • 독재시대에 권력자들의 말 한마디면 산자와 죽은자를 나눌수 있던 때 였으니...


    • - 안드레이 가브릴로프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했던 브레즈네프의 사위 였다는데 공산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다가 지금은 스위스에서 살며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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