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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식사랑은 짝사랑 - (1편) 부모의 마음
  • 노루골오도팔2017-07-20 19:23:27조회 119추천수 3댓글 12
  • 춘천 샘밭으로 아우를 떠나보낸

    그해 여름

    어머님 모시저고리

    고름에 묻어나는 눈물처럼

    장마가 졌다.

     

    아우가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이곳 사다리골을 떠난 후

    나는 요 며칠새 그의 꿈을 꾸었다.

     

    만취된 채 마루에 엎어져

    아버님

    어머님을 부르며 울먹이던 목소린

    밤마다 나의 깊은 잠을 깨우곤 하였다.


    하루 이틀 세월도 가고

    화천에서 날아온

    군사우편을 앞에 하고서

    어머님은 장마보다 길게 우셨다.


    - 졸시, <그해 아우를 떠나보내고>
    전문

     

     

    그 옛날 내가 국민학생 때 큰형님이 입대할 때도 지금처럼 여름이었고 장마철이었다. 하필이면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형님은 문밖을 나서 징집 집결지인 강릉으로 갔다. 아들을 보내고 어머니는 그저 비내리는 마당에 시선을 고정한 채 몇날며칠 하염없이 눈물을 찍어낼 뿐이었다. 어머니가 슬픔에 잠긴 탓에 그해 장마가 더 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으나 얼마뒤 큰형님의 옷가지며 신발이 담긴 소포가 왔고 그 속에 ‘부모님 전상서’라고 쓴 편지를 부여잡고 어머니는 또 그렇게 긴 시간 우셨다.

     

    분단국에서 아들 많이 둔 죄값일까. 세월이 지나 동생도 춘천 신병훈련소 샘밭으로 입영했고 큰형님을 보내던 그날처럼 어머니는 길게 우셨다. 해마다 한반도의 우기(雨期)는 여름한철 일시 왔다가는 거였지만 어머니의 장마는 그치질 않았다.

     

    한 세대가 지나 어머니의 장마는 내게로 왔다. 유난히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던 올여름 둘째가 입대했다. 첫째보다 막상 둘째가 먼저 입영통지서를 받아들고 보니 마음이 다소 심란하긴 했어도 중등 때부터 줄곧 기숙학교에 떼어놓은 아이라 덤덤히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라는 주변의 말과 부대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마치 캠프가는 거 같다”며 짐짓 눙을 치는 아이의 배려가 아니어도 난, 나만은 무덤덤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놈의 장대비만 내리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하필 내 아이를 보내는 날도 장마철이었고, 번개부대 연병장을 가로질러갈 때 주체할 수 없는 비가 쏟아졌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이었을까. 받치나마나한 우산을 쓴 채 다들 아무 말도 않고 앞으로, 첨벙첨벙 앞으로 걷기만했다.

     

    박력 넘치는 군악대 소리에 맞춰 각 잡힌 입소식이 끝날 때까지 용케도 집사람은 눈물을 참았다. 마지막으로 짧으나마 가족들과 한번쯤 석별의 기회를 줄 줄 알았는데 그 길로 작별이었다. 아이들을 남기고 가족들은 일제히 체육관 밖으로 나가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뜨겁게 한번 안아줄 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그 어떤 것이 치올랐고, 주변 눈치 아랑곳 않고 손나발을 만들어 외쳤다. 하나같이 반삭머리에 고만고만 구별이 가지 않는 아이들 숲을 향해 힘껏 내 평생 간절한 목소리로 아이 이름을 불렀다.

     

    “영우야~ 영우야~ ...사랑해!”

     

    아이는 들었을까. 흥남부두 철수 같은 소란스런 분위기에서 아빠의 목소리를 구별했을까. 영내 식당에서 점심을 할 때 반쯤 남긴 육개장을 앞에 두고서,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라는 말을 건넸지만, 정작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아이에게 간절한 건, 입소식 하러 체육관으로 들어서기 직전 야외 천막 아래 임시 흡연구역에서 피운 마지막 담배 한 개비. 그 한 개비 담배만한 것이 있을까. 그렇대도 엄마아빠는 당분간, 푸른빛만 띄어도 눈물이 날지도.

     

    너가 입영하던 날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더니

    너를 거기 두고 돌아오는 길, 우왁스레 그 비 헤치는 와이퍼처럼

    엄마아빠의 마음 모질게 훑어대더니

    그 뒤로도 너가 그리울 때마다 노루골에 걷잡을 수 없는 비가 내리고 있구나.

    장대같은 비가 올 때마다 그리움 쑥쑥 자라나지만

    이런 아빠를 보면 하얀이 드러내며 씨익, 웃을 것 같은 너를 생각하면

    그래, 아빠도 괜찮아. 다 괜찮단다.

    그러니 모쪼록 너도 괜찮을 것!

    무엇보다 웃을 때 빛나던 너의 보조개를 절대 잃어버리지 말 것!

     

    아우는 울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어머님의 손수건에 연신 묻어나는 눈물을 보았을 터인데 짐짓 모른 척한 것일까. 그렇게 아우는 배웅할 때도 무겁게 손만 흔들었을 뿐 끝내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것도 군사훈련의 일부였는지.

    아우는 연병장에서 벽돌을 깨었고 나는 사열대에서 박수를 쳤다. 그새 많이도 깨쳤구나. 마지못해 사는 몸. 흰 이를 드러내며 아우가 웃는다. 곁눈질을 잊지 않고 웃는다. 안다. 내 다 안다. 너의 맘. 칠성사단 수색대가 어찌 어깨 으쓱할 노릇일까만 늙은 부모 앞에 아우는 자랑처럼 웃고 있었다. 울고 있었다. 

    - 졸시, <면회> 중에서
     


    헤어지기 직전. 오전나절에 반삭한 녀석의 얼굴도 낯설었고, 막상 가족과 작별할 시간을 맞닥뜨리자 심각해진 표정도 그간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일주일여 뒤. 녀석들은 이렇게 용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맨앞에 선 훈병이 노루골아이다. 혼자 맨앞에 선 걸로 보아하니 중대장 완장 같은 걸 찬 모양인데, 어인 일일꼬. 줄반장도 귀찮다고 마다하던 녀석이...훈병들끼리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 자리를 제비뽑기로 뽑은 게 아니라 자원자로 가린 거라면...무슨 속셈이었을까.  
       

     

    생존신고....저 살아있네요. 올만입니다. 둘째아들 군에 보내고 한동안 무기력증에 빠진 듯. ㅠㅠ
    오디오고 뭐고 별 흥 날 것이 없다가 이제 조금 추스르고 일상을 찾은 듯합니다. 남들 다 가는 군대, 이 땅에 아들 둔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 웬 유난이냐겠지만 막상 맞닥뜨리고 보니 심란하고 착잡한 것은 어쩔 도리 없네요. 저희 부모, 우리 세대가 내리 겪었던 일을 자식세대에까지 대물림할 줄은 몰랐네요. 앞으로 또 얼마나 이어갈지...바라건대 한시바삐 단절할 수 있기를.

     

    둘째녀석을 입대시키고 요 몇 주 가라앉은 심사를, 예전 대학시절에 썼던 졸시(卒詩)를 끄집어내어 끄적거린 글입니다. 때로 면경을 닦듯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돈하기도 하거든요. 두세 편 정도 연달아 올릴 예정인데, 물론 제 글은 반전 빼면 시체죠.

     

    제목 [자식사랑은 짝사랑 - (1편) 부모의 마음]만 보고도 척 눈치 채신 분 있으실 테지만, 부모는 이렇게 오매불망 자식사랑, 자식걱정으로 연일 폭염주의보를 알리는 굉음이 휴대폰을 울려대도 비오듯 땀 흘리며 군사훈련 받고 있을 자식생각에 에어컨조차 켜지 않고 사는데, 과연 부모에 대한 자식 마음도 그러할까요. 과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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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봤자 오디오! 그래도 오디오!
    이젠 골짜기라 할 수 없게 된, 노루골이라는 곳에서 서식하며 음악을 즐기는 오도팔(誤道八). 십수년 (오)디오질을 했음에도, 수준이 도개걸윷모의 윷판에서 (도)마냥 여전히 생초보 단계에 머문 채, 오디오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나님어록을 약방의 감초처럼 소개하는 걸 즐기는 (팔)불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