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디오의 참맛
  • 맛이란 참 묘한 단어다. '맛이 갔다'고 하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상한 것이고, '맛이 없다'면 먹을순 있는데 맛이 없다는 뜻이다. 오디오도 비슷하다. 맛이 간 오디오는 고장이 나서 들을 수 없는 것이고, 맛이 없는 오디오는 들을 수는 있는데 감동이 없는 것이다.

오디오의 맛이란?

 

맛이란 참 묘한 단어다. '맛이 갔다'고 하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상한 것이고, '맛이 없다'면 먹을순 있는데 맛이 없다는 뜻이다. 간 거나 없는 거나 뜻은 비슷한데 간 건 먹을 수 없고, 없는 것은 먹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디오도 비슷하다. 맛이 간 오디오는 고장이 나서 들을 수 없는 것이고, 맛이 없는 오디오는 들을 수는 있는데 감동이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에 여럿이 모여서 진공관 파워앰프 비교 시청을 했다. A 앰프는 해상력도 보통이고 재생 대역도 넓지 않다. 반면 B 앰프는 해상력도 좋고 고음이 피어오르면서 화려한 느낌을 준다. 객관적으로 부족한게 명백해 보이는 A 앰프로 음악을 들을 때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음악에 빠져드는데, B 앰프는 분명 좋은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가슴이 뭉클해 지거나 음악에 빠져들지 않는다. 

현장에 있던 다수의 애호가들은 B 앰프가 좋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A 앰프가 좋다고 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소수에 불과하다. B 앰프는 뛰어난 스펙과 나름의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유명한 앰프다. 나도 왜 사람들이 B 앰프를 좋다고 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B 앰프로는 음악적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혹시 B 앰프를 좋다고 한사람들은 오디오 내공이 얕아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B가 좋다고 한 애호가 중에는 나보다 음악도 오래듣고 오디오도 오래한 친구도 있으니 그건 아니다. 다들 좋다는데 '왜 나는 별로일까?' 하는 생각이 사그러들지 않고 나를 불편하게했다. 솔직히 말하면 A 앰프의 진면목을 다수의 애호가들이 왜 느끼지 못하는지가 더 궁금하다. 

우연히 옥주현의 노래를 듣고는 정말 가창력이 좋고 잘부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슴이 멍해지거나 감정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물론 다시 듣고 싶거나 음반을 구입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다. 김광석이 부르는 노래는 TV로 들어도 가슴이 울컥해지면서 감정이 전해 온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옥주현이 김광석보다 음역도 넓고 음정과 박자가 정확하다. 김광석 만큼이나 감정이 풍부한 노래를 하는 임재범도 음정이 불안하거나 박자를 살짝 놓치곤 한다. 김광석이나 임재범의 노래를 기술적으로 잘 부른다고 하기는 어렵다.

'김광석이 노래 못한다.'고 하면 벌컥 화를 내면서 '어디서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는 소릴 듣곤 한다. 그런데 김광석이 노래 못한다는 얘기는 가수인 김민기씨가 나보다 한참 전에 먼저 했다. 솔로 가수로 독립을 꿈꾸던 김광석이 운동권 선배인 김민기씨를 찾아가 학전 소극장의 연극 공연이 비는 낮시간에 노래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 때 김민기씨가 '왜? 가수할려고! 너, 노래 못하잖아' 라고 했다.

노래 잘 못하는 김광석이 부르는 '이등병의 편지'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군에 입대하던 때의 감정에 빠져든다. 김광석이 절절한 감정을 실어 진심으로 부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옥주현이 노래를 대충 부르지는 않겠지만, 나는 옥주현의 노래를 듣고는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비슷하게 손열음의 피아노에는 몰입이 안되는데 조성진의 피아노에는 음악에 빠져든다. 하이페츠(Jascha Heifetz)의 연주는 몰입이 어렵지만 느뵈(Ginette Neveu)연주는 자연스럽게 음악에 귀 기울이게 된다.

 

오디오도 코드(Chord)나 할크로(Halcro)는 집중이 안되는데, 패스(Pass)나 다즐(Dartzeel)은 음악을 즐기게 된다. 골드문트(Goldmund)는 잘 안되고 FM 어쿠스틱스(FM Acoustics)는 잘 된다. 오디오리서치(Audio Research)는 힘들지만 쟈디스(Jadis)나 콘라드 존슨(Conrad Johnson)은 어렵지 않게 된다. 알텍(Altec)이나 GIP는 안되는데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은 쉽게 된다. 신형 진공관이 채용된 앰프는 몰입이 안되는데 구관으로 바꾸면 쉽게 음악을 느끼게 된다. MP3 화일은 안되는데 LP나 릴테이프는 쉽게 된다. 일본 라이센스 LP에서는 안되는데 국내 라이센스판이나 오리지날 판에서는 잘 된다. 스피커나 턴테이블에서 자작합판이나 MDF로 만든 것은 잘 안되는데 빈티지 미송합판이나 원목으로 만든 것은 잘된다.

음악에 몰입이 잘 안되는 앰프나 스피커라도 나름의 맛이 있다. 그 맛을 좋아하는 애호가도 적지 않다. 다만 내가 몰입이 안되는 것일 뿐이다. 도대체 왜 어떤 것은 되고 무엇 때문에 다른 것은 안되는지 설명하라고 하면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하지만 내 의식이나 의지로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대답하라고 한다면 잡음이 적고 배경이 깨끗하며 음색이 선명하면서 날카로우면 잘 안되고, 배경이 깨끗하지 않아도 음색이 부드러우면서 섬세하고 자연스러우면 잘되는 경향이 있다. 너무 빠르고 과한 해상력으로 빈틈이 없으면 힘들고 느린듯하게 여유가 있으면서 고즈넉하면 몰입이 잘 된다.

깊게 아래로 뚝 떨어지는 저음도, 광활한 무대도, 화려한 해상력을 자랑하는 고음도 내가 음악에 몰입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선명한 음상에 화려한 고음을 내는 소위 날리는 소리는 내가 가장 불편해 하는 소리다. 실제로 실연은 생각처럼 저음이 깊게 쑥 내려가지도 않고 독주악기도 선명하고 화려하게 피어오르지 않는다. 도대체 니가 얘기하는 음악성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표현되는 중역의 충실함이라는 표현밖에는 달리 오디오적으로 표현할 말이 없다. 

음악에는 기쁨과 슬픔, 분노 같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이 스며들어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즐거운 시간과 분노의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인생의 대부분은 힘겹고 고통스럽거나 외롭고 쓸쓸한 시간이다. 음악도 기쁨보다는 고통과 슬픔을 노래한 것이 많다. 실제로 음악이 가장 절절하게 와 닿을 때는 내가 괴롭고 힘들었을 때다. 기쁨이나 환희, 절규하는 고통스러움은 해상력과 다이나믹스만 있으면 표현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 배우에게 화려한 액션이나 오열하는 연기보다 정제된 내면연기가 하기가 제일 어렵다. 오디오도 은은하게 안개처럼 스며드는 내면의 슬픔의 전달이 제일 어렵다. 이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 오디오는 나름의 맛은 있겠지만, 나에게는 가치가 없는 오디오다. 해상력이나 오디오적 쾌감과는 별도로 음악의 슬픔을 전해주는 능력을 오디오의 깊은 맛이라고 하고 싶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끼는 소리의 참 맛이자 내가 느끼는 오디오에서의 음악성이다.

 

음악은 소리가 아닌 관념을 듣는 것이다!

 

12음기법으로 현대음악의 새장을 연 아놀드 쉔베르크(Arnold Schönberg)는 '음악은 관념(Idea)을 듣는 것이다.'라고 했다. 음악을 피상적인 소리로만 인식하지 않고 소리의 연속된 흐름 속에 내재된 음악의 구조와 관념을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다. 음악의 구조와 형식이 중요한 클래식 음악에 어울리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소리 이면에 있는 음악에  내재된 관념을 느끼는 것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 핵심적인 이유다.

'음악은 관념을 듣는 것이다'라고 하면 사랑이나 인생을 주로 노래하는 가요나 팝 음악은 어색해진다. 가요나 팝에는 소리 이면에 관념이 없거나 있다해도 희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요나 팝을 음악이 아니라고 할수는 없다. 음악을 관념으로만 들어야 하는 것인가? 음악을 소리 그 자체로 듣거나 감성적인 느낌으로 들으면 안되는 것인가!

누구는 음악을 소리 그자체에서 쾌감을 찾고 즐긴다. 안들리던 소리가 들리고 3차원 무대가 그려지는 신기한 체험을 즐긴다. 또 다른 누구는 음악을 들으면서 구조와 관념을 파악하면서 듣는다. 구조와 관념을 파악하면서 소름이 돋고 머리칼이 쭈뼛 서는 지적인 쾌감을 맛본다. 반면에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에 스며든 표정을 감성적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울적해지는 감정의 변화를 느끼면서 음악에서 위안을 얻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음악에서 관념을 듣는 사람은 굳이 오디오 매니아일 필요는 없다. 음악의 구조가 뮤직센터로 듣는다고 훼손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음악의 절정 고수들은 오디오를 그다지 따지지 않고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소리로 듣는 사람이 오디오매니아 로서 가장 어울린다. 소리를 찾아 헤매는 오디오 매니아 답게 소리 자체에 집중해서 극한의 쾌감을 찾는다. 음악을 소리로 듣는 사람은 해상력이나 무대의 크기, 배경의 적막감 같은 것을 따지는데, 이것은 비교시청을 통해서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다. 반면에 음악을 구조로 듣고 관념을 이해하는 사람은 다양한 해석의 음반을 듣고자 한다. 그래서 음악 매니아는 음반에 집중하지, 오디오 자체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음악을 감성으로 듣는다?

 

음악을 감성으로 듣는 사람이 남았다. 무엇이 음악에 몰입하게 만드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힘들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서 형성된 취향이기 때문이다. 두 기기를 옆에 놓고 비교시청을 해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 취향이 다르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참 좋은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광고 카피처럼 자기는 정말 좋은데 왜 좋은지 남에게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오디오 매니아야 말로 시체말로 진상 오디오 매니아다. 해상력도 아니고 무대크기도 아니고 대역도 아닌 음악에 몰입하게 하는 음악성이라니, 그걸 어떤 오디오 샵 주인이 알아서 맞춰 줄수 있겠는가?   

나는 소리 그 자체가 주는 쾌감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땐 관념을 이해하고 지적인 희열을 맛보기도 하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클래식을 들으면서도 관념의 파악보다는 음악에 스며있는 작곡가나 연주자의 내적 표정이나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고자 한다. 보통 감성을 잘 표현한다고 하는 오디오들이 해상력이 떨어지거나 음색이 뭉개지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내가 음악을 통해서 감성을 느끼고자 하지만, 해상력이 안좋거나 악기고유의 음색이 뭉개지면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디오 매니아치고 까탈스럽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내가 봐도 피곤한 스타일이다. 

오디오를 오래하고 음악을 많이 들으면 너그러워지고, 다양한 소리에 대한 포용력도 넓어질 줄 알았다. 물론 많은 오디오를 접하면서 소리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늘어가면서 객관적으로 오디오를 보는 능력은 좋아졌다. 그런데 혼자 조용히 듣고 싶은 오디오 소리에 대한 기호는 날이 갈수록 편벽해지고 까탈스러워지는 것 같다. 소리 자체로 쾌감이나 즐거움을 주는 소리도 있고, 음악의 관념을 훤히 잘 파악하게 해주는 오디오 소리도 있다. 그런데 이런 소리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다가 언젠가부터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지경에 이르렀다.

해상력이 좋고 대역이 넓으며 광활한 무대를 그려내는 억대 시스템 소리를 듣고 있으면 소리가 좋다는 생각은 든다. 이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 오디오가 마치 나에게 '이런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나를 사고 싶지?'라고 자신을 뽐내며 꼬시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래서 어쩌라고! 나보고 사라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 살 돈도 없지만 있어도 너는 안사. 왜? 날  감동시키지 못하니까!' 라고 답한다. 그 소리가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런 소리로 조용히 혼자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은 전혀 안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으로 감정의 전달이나 이입이 되지 않으면 음악을 들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

 

이솝 우화 '신포도'에서 여우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포도를 신포도라고 단정하고 포기한다. 후에 한 여우가 바위를 옮겨와 딛고 올라가 어렵게 포도를 따게 된다. 실제로 따서 먹어본 그 포도는 시어서 별 맛이 없다. 그런데 지켜보는 여우들 보란듯이 맛있는 표정을 지으며 의기양양하게 먹는다. 여우들에게 어렵게 고생하면 이런 맛있는 포도를 먹게 된다고 말하는 듯이 말이다. 만약 주위에 여우가 하나도 없고 혼자였다면 그 포도가 별 맛이 없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더 비싼 모델로 업그레이드 하고나면 소리가 더 좋아졌다는 자기 최면에 빠지기 쉽다. 좋아진 것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지인을 부른다. 소리가 좋아졌는 지 지인들의 평에 신경을 쓰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이 느끼는 느낌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펴보고 혼자 조용히 들으면서 스스로 더 만족스러운지 찬찬히 따져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디오를 통해서 내가 무엇을 즐기고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다.    

오디오가 재생하는 음악에서 감성적인 감동을 찾고자 하는 고민을 공유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하는 고민에 의견을 구하려고 옆을 둘러보면 사람이 별로 없다. 감동이라는 걸 찾는 것은 같지만 실상 소리를 듣고 의견을 들어보면 얘기가 엇갈리기 일쑤다. 내가 느끼는 감성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오디오 애호가가 많지 않은 탓이다. 시간이 갈수록 의견을 구할 곳이 없어져서 나 홀로 답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간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깊이 너무 먼 변방(?)에 까지 와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어떤 오디오가 내마음을 움직여 줄지 궁금하다. 지금도 음악에 녹아있는 감정과 표정을 어떻게하면 잘 느낄수 있을까 하는 궁리와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라서 오디오를 튜닝하고 매만진다. 갈수 있는데 까지는 가봐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오디오의 전원을 켠다.

글쓴이

  • 65년 서해안의 작은 섬에서 태어났고, 현재 한의사로 살고 있다.
    대학 시절 운명적으로 클래식과 오디오를 만나서 지금껏 지지고 볶으면서 지낸다.
    아날로그 오디오를 특히 좋아해서 관련 책도 몇권 냈다. 하이엔드와 빈티지 가리지 않는 오디오 박애주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