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 그리고 롯데홀
  • 세곳의 콘서트 홀의 특징을 살펴보았는데, 순위나 우열을 매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다만 세종의 대극장보다는 예당의 콘서트홀이 좀더 진보한 음향을 들려주는 것은 사실이다. 롯데 홀은 상대적으로 소편성에 장점을 가지는 음향특성으로 예당 콘서트홀의 단점인 밋밋함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대극장의 추억 

 

설레는 마음으로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오디오 소리가 아닌 실연으로 듣는 음악은 어떨까 하는 기대감에 살짝 긴장이 된다. 연주자들이 들어오고 악장이 바이올린을 켜서 음을 맞춘다. 지휘자가 입장하면서 관객들의 박수 갈채가 터진다. 자세를 고쳐잡고 음악이 시작하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실연을 처음 접하는 것이다.

실상 실연으로 들은 첫 소리는 황홀하지 않았다. 팀파니가 작렬하고 금관이 포효하는 총주에선 음악에 흠뻑 빠졌지만 바이올린 소리가 예상보다 작았다. 바이올린 독주는 모기 소리만해서 연주를 잘하는지 어떤지 분별하기도 쉽지 않았다. 오디오보다 훨씬 좋아야 할 실연이라기엔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난생 처음 들은 연주는 그랬다. 평생 잊지못할 연주인 빈필의 브람스 4번의 감동도 세종문화회관의 대극장이었다. 하지만 대극장은 실망과 아쉬움으로 기억되는 공간이다. 불타버린 서울시민회관을 신축하면서 탄생한 다목적 홀이라는 태생적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2004년 리모델링 하기전 대극장의 음향은 절망적이었다. 특히 중고음의 흡음이 과해서 바이올리니스트와 소프라노에겐 무덤과 같은 공간이었다.   

 

94년 키리테 카나와(Kiri Te Kanawa) 공연 때 기억은 지금도 선하다. 마음씨 좋은 뉴질랜드 원주민 출신 소프라노가 조금이라도 더 목소리를 내서 청중에서 감동을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스러울 정도였다. 조금만 더 무리했으면 목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96년 가디너(John Eliot Gardiner) 내한 공연 때는 기묘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챔버 규모의 악단에서 나오는 소리가 흡수되어 청중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 가디너가 악단을 최대한 객석쪽으로 끌어당겨서 배치 했다. 자신은 무대 맨 앞 끝자락에서 위태롭게 서서 지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대극장이 시설 노후와 음향적인 문제로 2004년 리모델링을 하게 된다. 재개관하면서 음향이 개선되어 최악의 음향이라는 평가는 벗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극장에 대한 세간의 음향 평가는 우호적이지 않다. 가끔씩 연주회 때문에 들러보지만 음향이 좋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별로 없다. 그러다 우연히 한 악단이 같은 곡을 대극장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대극장과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대극장은 사진에서 보듯이 무대가 직육면체 구조로 되어 있다. 객석을 향한 앞 부분이 터져있는 그런 형상이다. 무대 앞쪽에 위치한 바이올린 소리는 답답하고 작게 들린다. 특히 바이올린 독주에서는 이런 음향특성이 그대로 나타나서 비정상적으로 작게 들린다. 리모델링을 했다고는 하지만 객석을 이루는 공간 자체가 중고음을 너무 많이 흡수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케스트라 총주시에 팀파니, 튜바 그리고 더블베이스 소리는 강력하게 앞으로 뻗어 나온다. 팀파니나 튜바 같은 저음 악기 소리는 바이올린 보다 뒤쪽에 있어서 무대의 뒷면, 윗면 그리고 옆면에서 흡수되지 않고 반사되어 객석쪽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사진의 무대를 구성하는 직육면체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혼으로 객석을 향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오케스트라 총주시 바이올린 같은 고음 현악기의 음량과 튜바나 더블베이스, 팀파니 같은 저음악기의 음량이 비슷해서 같이 어우러져야 듣기에 자연스럽다. 그런데 대극장에서는 팀파니나 튜바같은 저음 악기의 음량이 상대적으로 커서 바이올린 소리를 삼켜버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저음이 넘치면서 웅장하고 다이나믹한 느낌을 주긴하지만 중고역이 약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우며 둔한 인상을 준다.

 

예술의 전당은 1988년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재원으로 지어졌다. 2천 5백석 규모 클래식 공연 전용 홀로 지어진 콘서트홀은 2005 리노베이션을 했지만 음향은 큰 변화없이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홀의 사진을 보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는 구조가 판이하게 다르다. 무대가 옆은 물론 뒤로도 개방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대극장과의 차이는 무대 위가 높게 열려 있다는 점이다.




대극장과 다른 콘서트홀의 이런 구조의 차이는 음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오케스트라 총주시 팀파니나 튜바 큰북의 소리가 대극장에서처럼 강조되어 앞으로 도드라져 쏟아지지 않는다. 대극장에서 엄청난 타격음의 홍수를 이뤘던 팀파니의 음이 예당에서는 얌전하게 들린다. 위치도 현악기와 금관악기 군뒤에 자연스럽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대 앞쪽에 위치한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첼로 소리는 상대적으로 살아나서 라이브하게 들린다. 공간의 대부분을 이루는 객석과 천장의 재질이 세종의 대극장보다 중고음에서 흡음이 덜되는 재질이라서 좀더 라이브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 총주시 저음악기와 바이올린과 비올라 같은 중고음 악기의 음량이 비슷해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대극장보다는 낫지만 콘서트홀의 음향이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예당 콘서트홀은 편성이 적은 챔버 오케스트라나 독주 바이올린 연주할 때 소리가 홀 전체를 채우지 못해서 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콘서트홀에서 음악을 감상할 때 오케스트라의 경우 2층 맨 앞자리도 감상하기에 좋은 자리다. 하지만 피아노나 바이올린 독주를 제대로 들으려면 1층 중간 이상 앞자리가 되어야 충분한 음량으로 즐길 수가 있다. 예당 콘서트 홀에서 독주나 소편성은 안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깊어질 즈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작년에 롯데가 초고층 빌딩을 지으면서 클래식 전용 콘서트 홀을 개관하게 되었다. 2천석 규모로 예당의 콘서트 홀보다는 약간 작은 공연장이다. 크기가 약간 작다는 것 말고 큰 차이가 있는데 공연장의 기본 구조가 다르다.  

 


 

일명 빈야드(Vineyard) 형 즉 포도밭 형상을 하고 있다. 음향 좋기로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닉(Berlin Philhamonic Concert Hall) 홀이 빈야드형 홀이고, 가깝게는 일본의 산토리홀(Suntory Hall)이 바로 빈야드형 홀이다. 일반적인 홀은 무대와 관객이 서로 마주보는 형태인데, 빈야드형 홀은 관객이 무대를 빙둘러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작년에 롯데 콘서트홀이 개관한 뒤로 갈 기회가 있었는데, 약속이 겹치면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 올해 들어 롯데홀에서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생겼다. 빈야드형 홀 답게 객석에서 보는 무대가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연주가 시작되면서 다시 한번 빈야드형 홀의 특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독주 바이올린이 아주 사실적으로 가까이서 연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시각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 음향도 자연스럽게 홀톤이 만들어지면서 가까이서 연주하는 것 같았다. 독주인데도 상대적으로 큰 음량으로 객석까지 잘 전달되었다.

우연히 두번이나 서울 시향의 연주를 롯데홀에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서울 시향 공연을 콘서트홀에서 익숙할 정도로 자주 들었기 때문에 롯데홀의 특성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롯데홀은 바이올린 소리와 관악기의 울림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챔버 편성에도 공간을 가득 채운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배음과 울림이 풍성하게 들렸다. 예당의 콘서트홀 보다 잔향이 좀더 길고 울림이 더 고급스러웠다. 잔뜩 기대를 갖고 들은 풀 편성 오케스트라 총주에선 악기소리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러지면서 역동적인 느낌을 선사했다. 다만 낮은 저음은 빈약해서 팀파니의 타격이 이어지는데 그 에너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중고역의 화려한 울림에 비해서 저음은 빈약하고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소편성이나 독주 악기에서 특유의 생생함과 고급스런 울림을 내주는 장점이 있는 홀이다. 원전 연주나 바로크 음악에 아주 잘 어울리는 울림을 가진 홀인것 같다.

오디오를 오래하다 보니 홀의 특성도 오디오 기기에서 나오는 다양한 조합의 소리와 자연스럽게 연결짓게 된다. 세종문화회관의 대극장은  중대형 ATC 스피커에 크랠 FPB 600이나 클라쎄 오메가 같은 기함급 파워앰프에 매칭한 느낌이다. 중저역이 빠르진 않지만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묵직하고 어두운 음색으로 사람을 사로잡는 사운드라고 할 수 있다. 바이올린 같은 매력적인 악기의 음색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저음의 응집력과 에너지는 인상적이다. 설사 자연스러운 저음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은 모범적인 마크레빈슨 앰프에 B&W 구형 스피커를 물린 사운드라고 할 수 있다. 탄탄한 저음을 바탕으로 고음과 저음의 밸런스가 잘 잡힌 표준적인 사운드라고 할 수있다. 저음이 과하게 앞으로 밀고 나오지 않는다. 밸런스가 잘 잡혀 있어서 어디가 모가 나거나 치명적인 단점이 없는 소리다.

모범적이긴 하지만 모니터 스피커 답게 중고음의 리얼한 울림이나 고급스러운 느낌은 다소 부족하다.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얌전하게 정돈된 듯한 사운드라고 할 수있다. 특히 실내악 이하 소편성을 맛깔나게 즐기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롯데 홀은 나그라 진공관 앰프에 쿼드 ESL 57이나  마틴 로간 같은 정전형 스피커를 연결한 시스템이 생각나는 소리다. 중음의 섬세함과 디테일이 아주 좋고 악기의 배음이 아주 잘 살아서 음악에 쉽게 몰입하게 해주는 사운드라고 할 수 있다. 중고역의 음색이 자연스럽고 생생한 반면, 저음의 양이나 에너지감은 다소 빈약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구성이다. 저음의 깊이나 풍성함은 부족하지만 정돈되고 타이트하고 정확한 저음을 내준다.

세곳의 콘서트 홀의 특징을 살펴보았는데, 순위나 우열을 매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다만 세종의 대극장보다는 예당의 콘서트홀이 좀더 진보한 음향을 들려주는 것은 사실이다. 롯데 홀은 상대적으로 소편성에 장점을 가지는 음향특성으로 예당 콘서트홀의 단점인 밋밋함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생생한 악기의 음색을 느낄수 있다는 점에서 한층 더 발전한 음악홀이다. 

호불호를 떠나 다양한 음향 특성을 갖는 홀이 많아졌다는 면에서 롯데 홀의 개관은 음악 마니아들에겐 행복한 소식이다.

 

서울시향 전용홀 신축을 위한 예산이 잡혔다는 소식이 얼마전에 있었다. 예정대로 지어진다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벌써 궁금해진다. 윌슨 오디오 스타일 일지, 아니면 소너스 파베르, 그도 아니면 혹시 락포트는 아닐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글쓴이

  • 65년 서해안의 작은 섬에서 태어났고, 현재 한의사로 살고 있다.
    대학 시절 운명적으로 클래식과 오디오를 만나서 지금껏 지지고 볶으면서 지낸다.
    아날로그 오디오를 특히 좋아해서 관련 책도 몇권 냈다. 하이엔드와 빈티지 가리지 않는 오디오 박애주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