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도치 않은 글렌 굴드의 배타적 마케팅
  • 굴드가 음악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회자되는 이유 중엔 100% 연주가 주는 즐거움만은 아닐 겁니다. 굴드의 의도치 않은 기행들이 사람들에게 ‘이야기꺼리와 음악’ 이라는 좋은 마케팅의 소재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굴드의 골베가 최고 인가요?

왜 그렇게 굴드, 굴드 하는 것이죠?”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연주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황스럽게도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에게서 말이죠.


아마도 애호가의 입장을 물어본 것 일 겁니다.

 

클래식 음악애호가 이거나 바흐의 골드베르크 음반을 구입하기 위해 고민을 하는 사람들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법한 의문일 것입니다.

시중에 수많은 건반 연주자들의 음반들이 있고 또 훌륭한 연주자들의 공연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그러한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요?

 

그 질문자에게 간단히 아는 만큼, 제가 생각하는 의견을 말해주긴 했지만 내가한 말에 대해 확신을 하고 있는지 생각을 정리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 굴드가 오랫 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연주뿐인가를 더 생각해 보게 되었구요.

 

점심식사 후 여의도에서 출발해,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집중해서 들어보며 운전을 합니다.(핸드폰에 저장된 것을 블루투스로)

끝까지 다 듣기 위해서 시내에 들어오면서 인왕스카이웨이 → 북악스카이웨이로 일주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 왔습니다. 그날은 다행히 날씨도 쾌청해서 참 즐겁고 평화로운 드라이브가 되었네요.

 

굴드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는 이견 없이 정말 훌륭한 연주입니다. 처음 시작되는 아리아는 마치 수줍은 소녀의 나직한 읍조림 같이 시작을 해서 폭풍처럼 이어지는 변주곡은 고무줄같이 땡겼다 놨다 하는 조화. 그의 연주는 참으로 변화무쌍한 것이 매력입니다.

원곡의 묘미를(굳이 피아노로 왜? 라는 개인적 의문) 살리려고 스타카토를 강조한 주법서부터 중반부의 느린곡은 아주느리게 서정적인면 까지 강조된 한 편의 대하드라마 라고 할수도 있고 또 아주 재미있는 막장 드라마의 요소를 두루 두루 갖추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좀 끝나나보다 하면 느닷없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것이 ‘내가 니 애비다’ 라든가 ‘얘가 니 형이야’ 라고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여지없이 때리고 마는 아침드라마의 극적인 요소들이 수두룩 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굴드 이전의 골드베르크 연주는 사실 일반인들이 접하기엔 조금 지루하게 들렸을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마치 중학생 때 누나가 구입해왔던 바흐의 인벤션과 푸가 전집을 처음 들었을 때의 황당한 느낌처럼.. 그때 생각이 ‘도대체 이게 무슨 음악인가’ 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구세대의 연주들을 접할 때 지루함을 느꼈던 것을 고백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정말 명곡이다’라고 얘기하니까 인내를 가지고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는 바흐다”(브뤼헨이 말하길..) 라는 말을 들었다는 레온하르트의 쳄발로 연주도 우리 매니아들에게는 복음서와 같은 연주일지는 몰라도 바로크나 바흐음악에 이해가 부족한 청자라면 귀에서 피고름 나오는 (40분 동안 챙챙~ 거리는) 지루한 음악이 분명할 겁니다.

 

그러던 차에 굴드의 등장은 마치 1,500cc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던 사람들이 터보엔진을 장착한 스포츠카를 탔을 때 뒷목이 제껴지는 듯한 속도감과 흥분을 경험하게 해 준 것 같지 않았겠는지요. 

 

그런데 말입니다...(김상중?)

굴드가 음악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회자되는 이유 중엔 100% 연주가 주는 즐거움만은 아닐 겁니다. 그것은 굴드의 의도치 않은 기행들이 사람들에게 ‘이야기꺼리와 음악’ 이라는 좋은 마케팅의 소재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굴드 본인은 그런 의도를 갖지 않았겠지만 그의 독특한 성향과 기행들은 클래식음악의 소비자들에게 의도치 않은 ‘배타적 마케팅’이 된 것입니다.

배타적 마케팅이란 물건을 판매하면서 굳이 내놓고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 마케팅과 비슷한 것으로 쉽게 풀어서 얘기하자면 명품가게에 직원이 ‘이거 얼마에요’ 라고 물어보는 손님에게 ‘비싸요...’ 라고 자존심을 긁어서 결국엔 ‘여기있는 거 다 주세요’ 라고 말하게 만드는 겁니다. 오디오 덕후들이라면 용산에서 누구나 당해 본 ‘개무시’ 같은 것이겠죠.

 

그러한 배타적 마케팅적 요소로서의 굴드를 말해보면,

- 어느시점부터(1968년) 굴드가 공연은 하지않고 레코딩을 통한 음반 발매로만 대중과 소통.

- 아버지가 만들어 줬다는 20cm 낮은 초딩의자만 고집.

- 레코딩을 하면서 흥얼거리는 허밍이 녹음이 되어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됨.

- 악수하는 것을 극히 싫어해서 누가 악수를 청하면 ‘올 한해는 악수 안하는 해로 정했다’고 하는 황당무계한 대인기피증세.

- 연주 전 20분 동안은 온수에 손을 담궈야 함.

-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3미터나 되고 400kg이나 되는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를 몇 번이고 분해했다가 조립했다고 함.

-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조율사(호로비츠와 굴드 전속) 월리엄 후퍼가 친근감의 표시로 등을 툭~ 치자 폭행으로 고소 등등..

 

미디어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에 글렌 굴드의 기행은 아마도 더 확대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 겁니다. ‘연주가 기똥찬데다가 애가 골때려...’ 라고 말하는 화제꺼리를 제공한 것이죠.

그것이 ‘허니버터칲’이나 흰 국물의 ‘꼬꼬면’처럼 소비자들의 자발적 확대 재생산된 구전효과와 같았을 겁니다.(위 과자나 라면은 유행이 지나서 거품이 사라져 버렸지만 굴드의 골베는 아직도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다름)

클래식 음악의 고관여 소비자들 에게는 그의 까칠하고 얄미운 기행들이 더욱 신비롭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굴드의 숨 넘어 갈 만한 연주로 모든 것이 용서되기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마치 오지 오스본 같은 록스타가 마약을 하고 노래를 해도 멋있게 보이는 것과 같은 착시 효과도 일부 있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굴드의 음악을 아는 것만으로도 클래식 마니아로써의 로얄티, 프리미엄을 갖는 심리적 만족감도 더 했을것 이구요. 조금은 현학적으로 보이기도 했겠지요.

 

“글렌굴드의 골드베르크를 저는 제일 좋아해요” 이 말이면 클래식매니아 인증 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니까요.

클래식을 좋아한 이래로 수많은 연주자들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들을 들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누구의 연주라도 다 좋게 들리구요.. 거부감 없이 듣습니다.

얼마 전 발매된 프랑스 ‘알렉상드레 타로’의 골베도 얼마나 좋습니까? 지인들에게 제가 말하길 ‘굴드의 연주가 매운 아구찜 이라면 타로의 연주는 복지리 같다’ 라고 표현을 하기도 했네요. 굴드는 굴드대로 좋고 타로는 타로대로 좋았기 때문이지요.

아구찜과 복지리는 둘다 맛있는 음식이지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럴 것이 피아노 연주자로써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녹음하는 연주자라면 상업성과 음악성이 검증됐기 때문에 어떤 연주도 취향의 차이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가끔 바흐에 관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과연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불면증을 위한곡 맞나?’ 라던가. 그 때의 쳄발로 같은 악기로 연주했을 때 음량이 어땠을까. 이 곡이 이토록 유명해지고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을받는 음악이 됐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뻐할까? 등등.

그럴 때마다 꼭 따라오는 의문한가지, ‘바흐가 이 연주를 좋아할까?’  라는 것이죠.

과연 바흐는 굴렌 굴드의 연주를 들었을 때 뭐라 할까요? 자신의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조금도 폄하되는 것을 못 참고 불같이 화를 내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굴드를 봤다면 뭐라 했을까요?

등을 구부정하게 숙인채로 맛이 간 아이처럼 흥얼거리며 연주하는 굴드를 봤다면? 어쩌면 ‘이런 미친 새퀴야!~’ 라면서 화를 내고 주먹을 휘둘렀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바흐는 그의 아들 크리스찬 바흐가 무심히 연주를 하다가 자신 없이 우물거리며 4.6화음으로 연주를 마치자,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아들의 따귀를 찰지게 때린 후에 그것을 마무리하는 시범을 보여줬다고 함)

 

저는 이사람 저사람 바흐의 골드베르크 연주 여행을 하다가도 언제나 돌아와 화장대에 앉듯이(?) 마무리를 하게 되는 연주가 두 곡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것과 같은 (브뤼헨이 ‘그는 바흐다‘라고 말했다는..) 가장 정통성에 근접한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와 그 또라이 글렌 굴드 자신조차도 ‘그분의 연주를 참고로 공부했다’고 말한 ‘로잘린 투렉’의 연주 입니다.

 

이제 제 생각을 총괄 정리해 본다면...

어떤 이들은 골드베르크연주는 굴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뭔가 두부를 두토막으로 썰 듯이 극단적인 비유인 것 같구요.

바흐라는 거대한 음악의 성이 있다면 그안에서의 굴드는 ‘굴드의 골드베르크’라는 하나의 훌륭한 카테고리를 만들었다고 생각 되는 바 입니다.

굴드는 굴드 입니다.

 

글쓴이

  • 신문쟁이 7년, 홍보쟁이 5년, 광고쟁이 10년, 광고 문화마케팅회사, 대학에서 숟가락 얹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