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쿤 DAC-21
  • 결국 내가 하이엔드라고 만들어 낸 사운드는 아주 바삭바삭한 질감으로 가볍게 피어오르는 그런 소리가 되었다. 여기에 뭔가 단 하나의 점을 찍어서 두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면? 바로 바쿤인터네셔널의 DAC21 리뷰를 진행하면서 들게 된 생각이다.

 

두 마리 토끼에 대한 생각


결국 내가 하이엔드라고 만들어 낸 사운드는 아주 바삭바삭한 질감으로 가볍게 피어오르는 그런 소리가 되었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하면 크론질라의 앰프와 와트퍼피의 연결에다가 시너지스틱리서치의 순은선으로 스피커케이블과 인터케이블을 도배한 뒤에 에어의 DAC를 와이어월드의 순은선으로 연결했기 때문이다. 괴상하게도 이 시스템을 하나하나 구축하면서 바삭거리는 소리에 과도하게 집착하며 입안에서 팍팍 터지는 기포와도 같은 소리의 피어오름에 매진한 결과이다. 물론 많은 시간과 금액을 지불한 터라서 구축된 시스템에 불만이 있을 순 없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잡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 진한 감성의 고순도 동선과 중음의 밸런스가 전해주는 “음악”의 허전함을 부인할 길이 없다.

여기에 뭔가 단 하나의 점을 찍어서 두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면? 어쩌면 용한 해결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바쿤인터네셔널의 DAC21 리뷰를 진행하면서 들게 된 생각이다.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친구의 집에서 바쿤의 앰프를 접해보고 이리저리 사용해 본 적이 있다. 그때 참 인상적인 제품의 디자인, 작은 체구의 앰프가 야무지게 스피커를 제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초밥집의 스시 장인이 연상되었다. 당시에는 요정도 앰프를 하나 사서 탄노이 스털링 같은 스피커와 함께 놓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회사는 일본의 바쿤프로덕츠 이며 DAC-21의 제조사인 바쿤인터내셔널과는 전혀 다른 회사다. 바쿤인터내셔널은 바쿤프로덕츠의 기반기술을 사용해서 여러가지 제품을 만들어 내는 한국회사라고 하며 본 제품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 – 한국산 오디오 기기이다.

DAC-21은 두꺼운 책 한권 정도의 한 손으로 들어 옮길만한 크기지만 단단한 질감과 무게감이 더해져서 대단히 큰 존재감을 발산한다. 알루미늄을 절삭해서 끼워맞춘 엔클로저는 전성기의 와디아를 무색하게 하는 높은 정밀도가 더해져서 매우 만족스럽다. 전면에는 두개의 토글스위치가 있는데 하나는 입력을 USB와 동축에서 결정하는 스위치이며 다른 하나는 전원을 내리는 스위치라서 사용자에게 특별한 조작을 요구하지 않는다.

 

 

 

 


 

 

배터리 전원부의 위력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DAC-21은 배터리로 구동되는 장치다. 배터리로 구동된다는 점은 엄청나게 많은 장점을 제시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단점 역시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배터리구동의 음향장치는 많은 경우에 잡음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제작자는 여러가지 시도 끝에 가장 좋은 결정으로 배터리를 전원장치로 채택 하였을 것이다. DAC-21을 배터리외에 다른 전원장치로 사용해 볼 수 없는 현재로서는 아마도 DAC-21이 들려주는 적막감과 해상도의 상당 부분이 배터리 구동설계의 덕택이라고 추측해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카라얀과 안네 소피 무터의 격정적 에너지가 쏟아지는 브람스 바이얼린 협주곡이 분노의 정상으로 치닫는 도중 발생한 느닷없는 침묵이 배터리 방전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본 제품은 방전도중 충전되지 않으며 전면의 전원 스위치를 꺼 놓아야만 충전이 이루어 진다.

나는 DAC를 위한 음원으로 맥북에 아마라와 오디르바라 두개의 플레이어를 설치해서 사용하고 있다. 맥OS에서 DAC-21은 별도의 과정이 없이 바로 인식되며 플레이어의 설정창에서 출력대상으로 DAC-21을 선택하면 아주 쉽게 동작을 시킬 수 있다.  전면에 암호처럼 LED로 표시되는 DAC-21의 인터페이스가 다소 불친절해 보이기는 해도 그다지 크게 답답한 구석은 없다고 보여진다.

시청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점은 다른 여타의 DAC에 비해서 낮은 음량으로 들린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DAC-21의 다이나믹레인지는 동급의 DAC에 비해 무척 넓어서 낮은 음량으로 녹음된 음악은 더 작게 들릴 가능성이 있다. 내 생각에는 그러나 다소 낮은 음량으로 튜닝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프리앰프의 볼륨을 좀 더 올려서 들어야 했다.

 

 

 

 


 

 

열정과 미세한 음을 포착하는 뛰어난 해상도


항상 그렇듯 시청은 잭슨 브라운의 Load out Stay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대편성은 좀 부담스럽고 적당히 넓은 다이나믹레인지에 각종 악기가 요기조기 감추어져 있어서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기분이 드는 곡이다. DAC-21로는 대여섯 가지의 새로운 리프가 발견된다. 분명히 거기 있던 기타나 베이스 혹은 드럼연주의 한토막인데 왜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걸까. DAC-21이 한번 알려준 이후로는 다른 기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DAC-21을 통해서 듣는 음악은 에소테릭의 분리형 CDP와 매우 흡사한 이미지를 구현해 낸다. 나는 예전에 에소테릭의 기함급 분리형 SACDP를 리뷰하면서 디지털이 굳이 아날로그를 흉내 낼 필요가 없는 새로운 영역의 디지털 음상을 경험했다고 피력한 바 있다. 그 때 받은 진지하고 무게감이 있는 디지털 하이엔드의 고갱이가 단단한 그런 소리를 DAC-21이 들려주고 있다. DAC-21을 사용하면 신기하게도 앞서 투덜댄 나의 바삭한 시스템을 고순도 단결정 동선으로 구성된 찰지고 뚜렷한 무대감이 그려지도록 만들어 낸다.

매우 좋아하는 영화중의 하나인 “There will be blood”의 엽기적인 엔딩 씬의 브람스 바이얼린 협주곡은 역동하는 광기의 에너지를 음악으로 표출하는 천재적 연출이라고 행각한다. 그래서 브람스의 바이얼린 협주곡 라장조 삼악장은 내게 음악 자체보다 영화의 장면을 더욱 연상케 한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찰현의 에너지와 열기로 미루어 틀림없이 사라 장의 연주일 것이라고 단언했는데 창피하게도(게다가 어이없게도) 그 연주는 안네 소피 무터와 카라얀의 협연이었다. 괴상한 것은 그 음악을 따로 들으면 영화를 볼 때 느낀 흥분과 열정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DAC-21을 통해서 연주되는 무터와 카라얀의 브람스는 영화를 볼 때 느끼는 소름과 광기를 음상의 열기와 에너지를 통해서 고스란히 전해 준다. 이와 비슷한 느낌은 다른 여러가지 음원을 통해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나는 그 이유를 제작자의 독특한 디지털 튜닝이라고 생각한다. 본 기기를 설계하고 제작하고 튜닝하면서 제작자는 아마도 음원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모두 뽑아내어 낱낱이 보여주는 기획을 시도한 듯 하고 그 기획은 성공적이었다는 판단이다. 충분히 좋은 시스템에서 본 기기를 시청하면 누구든 마치 HD에서 UHD로 넘어간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해상도와 뚜렷한 명시성을 강조하여 엄청나게 커다란 그림이 조목조목 또렷하게 눈앞에 펼쳐지다 보니 몇몇 예기치 못한 상황을 야기하게 된다. 그중의 하나가 요즘 많이 회자되는 공기감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사용하는 Ayre의 QB-9DSD는 공기감을 강조하기 위해 무엇인가 음상을 뿌옇게 만드는 튜닝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비슷한 가격대의 두 기기가 길고긴 수평선의 양쪽에 각각 포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제작자의 설계철학이 뚜렷한 마당에 설계의 변화가 예상되지는 않으므로 본 기기를 사용하려면 뭔가 사용자의 측면에서 대응이 필요하리라고 보여진다. 나의 첫번째 조언은 순은선 보다는 순동선을 사용하라는 점이다

 

 

 

 

 

음악을 들으려면 항상 충전상태를 확인해야 하고 디스플레이도 그리 친절하지 않지만 본 기기의 성능은, 특히 디지털 프로세싱의 성능은 매우 우수하다. 가격까지 알고 나면 아마도 반드시 사야만 하는 장치로 욕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가장 필요한 머스트해브 아이템이 될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언컨대 본 장치를 배터리의 충전상태에 관계없이 (살짝 음질의 손해를 보더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새 식구로 들여 앉히게 될 것이다. 현재의 상태로는 나의 게으름에 감당이 되지 않을 것이므로……

 

 

 

 

글쓴이

  • 연세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산업공학석사학위를 받았으나 학교를 다니면서 이룩한 훌륭한 일은 밴드활동 이었다고 생각하는 중년.
    필립스와 제너럴모터스, 인텔 등 다국적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갑자기 그만둔 다음 IoT와 스마트인테리어 사업을 창업하여 경영하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음악동아, 스테레오뮤직, 월간오디오를 비롯 온라인 웹진에 오디오 및 문화 컬럼을 다수 기고해 왔으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오래가지 못하는 특징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