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Rising Star’ 안드리스 넬슨스 편
  • 2003년,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트럼펫 단원으로 경력을 시작했던 넬슨스는 동악단의 수석지휘자가 되었고, 2009년에는 메트로폴리탄, 2010년에는 바이로이트에 데뷔했다.

Prologue  

 

이른바 발트해 3국 중의 하나인 라트비아는 클래식 음악팬들에게는 낯설지 않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같은 우리 시대의 거장들의, 냉전시대 같으면 러시아 음악가로 뭉뚱그려졌을 이들의 조국으로 말이다. 안드리스 넬슨스는 이들의 영광을 이어갈 라트비아가 낳은 지휘계의 기린아다.

넬슨스의 부모는 모두 음악가였는데 어머니는 라트비아에서 최초로 역사주의 연주 앙상블을 만든 합창 지휘자였고, 아버지는 첼리스트였다. 5살 때 어머니와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관람하다가 탄호이저가 죽는 장면에서 어린 넬슨스는 울음을 터뜨렸는데, 이때의 경험이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피아노로 음악공부를 시작한 넬슨스는 트럼펫과 성악도 공부했고, 어머니의 영향으로 역사주의 연주에도 흥미 이상의 관심을 보였다. 프로 음악가로의 시작은 지휘자가 아니라 어릴적 공부한 트럼펫을 연주하는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는데, 지휘법을 공부하기 위해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으로 유학, 알렉산더 티토프에게 사사했다. 마스터클래스에서는 동향의 마리스 얀손스에게 배웠는데, 그 후로 넬슨스는 얀손스를 사숙했다.

2003년,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트럼펫 단원으로 경력을 시작했던 넬슨스는 동악단의 수석지휘자가 되었고, 2009년에는 메트로폴리탄, 2010년에는 바이로이트에 데뷔했다. 이런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넬슨스는 젊은 지휘자 중에서 콘서트 홀과 가극장 양쪽을 지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2007년에는 사이먼 래틀이 상임으로 있었던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에 부임했고, 3년 계약이었던 재임기간은 곧 2015년으로 대폭 연장되었다.

넬슨스는 동악단과 차이코프스키, R.슈트라우스, 스트라빈스키 등의 작품을 orfeo 레이블로 선보였고, 승승 장구하는 넬슨스는 사이먼 래틀 사임 후의 베를린 필 상임으로까지 거론되었다.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추기경들이 회의를 일컫는 콘클라베에 빗대어, 클래식 음악계의 콘클라베로까지 불린 사이먼 래틀 사임 이후의 베를린 필 상임 지휘자로 키릴 페트렌코가 선출되자 넬슨스는 제임스 레바인의 후임으로 미국 동부를 대표하는 명문 악단 보스턴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다. 이로써 그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미국의 명문 악단을 동시에 손에 넣는, 이른바 ‘제트기 시대의 지휘자’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최근 세계 최고(最古)의 오케스트라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상임 지휘자 자리에 리카르도 샤이의 후임으로 취임했다. 맡고 있는 자리의 비중이나 평단의 일치된 호평, 상임 지휘자임에도 한 도시에 몇 개월 이상을 머물지 않음에도 그에게 애정을 보내는 청중. 78년생이니 아직도 30대인 젊은 지휘자는 일찌감치 찾아온 전성기를 만끽하고 있다.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영웅의 노래>

안드리스 넬슨스/바이에른 방송 관현악단

레이블: BR Klassik

‘신세계’가 2010년, 영웅의 노래 2012년 녹음이니 30대 초반인 넬슨스가 웅비하기 시작할 무렵의 기록이다. 이미 이 때부터 그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표현영역의 폭넓음, 타고난 활력을 오케스트라에 전이시키는 능력, 수도없이 녹음된 곡을 처음 듣는 것처럼 만드는 신선함이 나타나고 있다. 넬슨스는 성악곡으로까지 만들어진 2악장의 서정성과 대학가의 응원가로까지 쓰이는 4악장 금관 팡파르의 역동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대신 그들의 속성을 극대화 시키는 쪽을 택한다. 확실히 ‘극장의 지휘자’, 카펠마이스터다운 솜씨. 드보르작의 교향시 전집 세트에서나 들을 수 있을 ‘영웅의 노래’ 만큼이나 ‘신세계’ 교향곡이 신선하게 들리는 희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신세계’ 교향곡은 잔향이 풍성한 편이라고는 할 수 없는 헤르쿨레스잘에서의 녹음이지만 바이에른 방송 관현악단의 묵직하고 푸근한 음향이 잘 포착되어 있다. 금관이 폭발하는 오디오 파일 취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금관의 강주 속에서도 목관의 ‘울림’이 아닌 ‘연주’가 온전히 들린다. 무대를 좁히지도 넓히지도 않은, 그래서 더 광활하고 자연스런 무대와 3악장 서두를 장식하는 심벌즈의 선연함까지. 라이브 녹음이 어느 경지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연주의 품질에 걸맞는 훌륭한 녹음.

 

 

바그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안드리스 넬슨스/로열 콘체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레이블: RCO Live

녹음 : 2015.5.24, 26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허바우

바이로이트에서 환영받는 넬슨스의 바그너 해석을 감상해볼 수 있는 음원으로 연주회 형식의 공연이다. 바그네리안의 성지인만큼 바이로이트는 녹녹한 곳이 아니다. 레퍼런스 레코드 레이블의 간판 지휘자이자 오디오 파일들의 영웅인 에이지 오우가 감격하며 입성했다가 자격미달로 리허설 도중 쫓겨난 곳이 바로 바이로이트일 정도. 사숙한 얀손스가 상임으로 재임하고 있던 콘체르트허바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넬슨스의 지휘는 가수를 이끄는 데도 못지 않게 능숙하다. 독창자들은 일장일단이 있지만 오케스트라에게는 어떤 아쉬움도 없다. 유장한 바그너의 악극이 이렇게 쉽게 들리기도 쉽지 않을 듯.

세계 최고의 콘서트 홀 중의 하나인 콘체르트허바우에서의 녹음인 만큼 모든 음 끝이 기분 좋게 동그랗게 말아져 있고, 울림은 웅숭깊다. 음반으로는 CD로 발매되어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고해상도 음원에서는 대부분 만족스러워졌다. 고해상도 음원이 CD 포맷에 비해 ‘음향’적인 부분에서만이 아니라 음악적인 차원에서 어떤 이점을 갖고 있는지를 살피기에 좋은 음원.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므첸스크의 맥베스부인> 중 ‘파사칼리아’

안드리스 넬슨스/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레이블: DG

녹음 : 2015.4 보스턴 심포니 홀

보스턴 심포니와 향후 2년에 걸쳐 진행할 ‘스탈린의 그늘 아래서’란 제목의 쇼스타코비치 프로젝트의 첫 번째 녹음. 프로젝트명에서 알 수 있듯이 스탈린 치하에 작곡된 5-10번까지의 교향곡을 녹음한다. ‘이제는 없는’ 스탈린의 초상이라는 설이 지배적인 2악장 스케르초, 음표를 통해 D-S-C-H를 서명하는 동기가 담긴 3악장 인터메조 등으로 유명한 10번 교향곡을 통해 넬슨스와 보스턴 심포니는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출범식을 집행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역동성과 불안함, 무엇보다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에 없어서는 안 될 신랄함을 갖춘 탁월한 해석.

어마어마한 초저역이 담긴 녹음은 음향이 좋기로 유명한 보스턴 심포니 홀의 그간의 명성마저도 뛰어넘어선다. 간혹 녹음에 대해 좋지 않은 평을 하는 이가 있는데, 음의 높낮이와 양이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는 곡이고 녹음이다보니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이어폰을 통한 감상으로는 절대 그 가치를 알 수 없는 음원으로, 가능한한 대형 스피커로 감상을 권한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No. 5, 8, 9, 극부수음악 <햄릿>

안드리스 넬슨스/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레이블: DG

녹음 : 2015.10~11, 2016.2~3 보스턴 심포니 홀

‘스탈린의 그늘 아래서’의 2탄. 20세기에 작곡된 가장 인기 있는 교향곡일 5번이 포함되어 있는 본작으로 동콤비는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1탄의 대성공으로 고조된 기대감을 일백퍼센트 만족시키는 완성도 높은 속편. 여전히 신랄하고 냉기가 도는 음을 바탕으로 넬슨스는 독재가 사회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 심리의 드라마를 탁월하게 전개한다. CD 포맷의 한계를 돌파하는 듯했던 큰북과 콘트라베이스의 요란하고 스산한 음이 고해상도 음원에서는 봉인에서 풀린 마귀 마냥 듣는 이의 넋을 빼놓는다.

15년에 녹음된 교향곡들과 16년 녹음인 ‘햄릿’의 캐릭터가 다소 다른 것도 흥미로운데, 전자쪽이 확산되어가는 장려함이 일품이라면 후자 쪽은 좀 더 꽉 조여진 음. 하지만 어느 쪽이든 공간감과 정위감이 최상급이어서 단박에 좋은 의미에서의 라이브 녹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곡이 끝나자마자 터져나오는 박수갈채로 현장의 청중들이 얼마나 연주에 압도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 ‘코다’, ‘조이클래식’, ‘스테레오 파일’, ‘월간 오디오’, ‘출판 저널’ 등의 월간지에 고정 필자로 활약해 왔으며, 삼성생명 및 기업 중역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세미나 및 대중강연으로 평단과 연단에 공히 이름을 알려왔다. 클래식 객원기자로 중앙일보에서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멀티음악공간 ‘스트라디움’ 에서 음악 강연을 해왔다. 저서로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반>(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