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리뷰] 안토니오 산체스 & 마이그레이션
  • 55분 31초간 쉬지 않고 연주되는 5부 구성으로 잘 쓰인 장편소설을 연상케 할 만큼 전개가 탄탄하다. 모든 선율과 리듬이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요약하면 ‘Groove with Stories’ 정도가 되지 않을까?

 

라이브와 레코드 양쪽의 미덕을 동시에 구현


아주 강력한 ‘올해의 공연’ 후보다. 여운이 가시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지난 열흘간 최상의 공연이 줄을 잇는 통에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는데 그중에서도 어젯밤은 유난히 찬란했다. 가히 독보적.


드러머 안토니오 산체스는 2002년에 팻 메스니 그룹의 정식 멤버가 되며 널리 알려졌다. 이후 팻 메스니의 음악적 동반자로 맹활약하고 있으나 그를 단순히 사이드맨으로 여기는 건 오산이다. 2007년부터 수준 높은 리더작을 꾸준히 내놓고 있으며, 2014년엔 영화 <버드맨>에 참여해 드럼 하나만으로 심리를 묘사하는 개성적인 음악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크게 높였다.

 

어제 공연은 2015년작 <The Meridian Suite> 의 감독 확장판이었다. 이 앨범은 그의 음악적 상상력과 연주력이 응축된 수작으로 특정 장르로 분류하는 것조차 곤혹스러울 만큼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55분 31초간 쉬지 않고 연주되는 5부 구성으로 잘 쓰인 장편소설을 연상케 할 만큼 전개가 탄탄하다. 모든 선율과 리듬이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요약하면 ‘Groove with Stories’ 정도가 되지 않을까?

 

감독 확장판이라고 표현한 것은 55분 31초가 80여 분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The Meridian Suite> 의 음악 자체를 한결 확대했을 뿐 아니라 재즈 본연의 즉흥연주와 잼도 군데군데 곁들여졌다. 탄탄한 구성과 서사를 고스란히 살리는 가운데 일류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를 만끽할 수 있게끔 한 절묘한 편곡이었다.

 

레코드와 라이브 양쪽에 요구되는 미학적 지점을 동시에 구현해낸 보기 드문 공연이었다. 레코드는 반복 청취를, 라이브를 일회성을 전제로 하기에 각기 요구되는 바가 다르다. 실제로 음반으로 들을 땐 완벽했던 음악이 라이브에선 밋밋할 때가 잦고, 라이브에선 생생하고 뜨거웠던 연주 또한 녹음해서 들으면 지루할 때가 잦다. 어제 연주는 이 딜레마를 완벽하게 해결한 모범 사례로 평하고 싶다.

 

특히 산체스의 드럼 연주에는 엄지손가락을 백 개쯤 날려주고 싶다. 기술적인 면모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그토록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리듬을 너무나도 태연하게 두드려대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 한데 그의 연주력보다 더욱 돋보인 건 스토리텔러로서의 면모다. 80여 분 동안 음악의 구성과 정서를 통째로 관할하며 밴드가 합심해서 한 편의 체계적인 서사를 쓰도록 이끌었다. 덕분에 드러머가 음악가로서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을 보고 있는 게 아닌지 몇 차례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올해 만난 연주자 가운데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이와 그에 대한 내 감상을 말하자면 얼추 다음과 같다. 제프 벡은 여전히 ‘경이’ 그 자체였고, 조 새트리아니는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봤으며, 존 패티투치는 시종일관 ‘경탄’을 자아냈다. 엘리소 비르살라제는 내 오감을 완전히 ‘압도’했으며, 루돌프 부흐빈더는 음 하나하나에 문화를 각인해 ‘다름’을 느끼게 해줬고, 에마뉘엘 파위는 말 그대로 ‘초인’이었다.

 

그렇다면 안토니오 산체스의 연주에서 느낀 그것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 같은 경우는 ‘도취’를 거론하고 싶다. 그가 밴드 멤버들과 함께 그려내고자 하는 음악 자체에 온전하고도 순수하게 몰입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경이, 동경, 경탄, 압도, 다름, 초인 등과 비교하면 조금 더 거리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지?

 

최정상 연주자들을 놓고 우열을 가리는 건 가당찮은 일이나 딱 하루씩의 연주만 놓고 음악적으로 가장 와닿은 쪽을 꼽으라면 조심스레 산체스를 들고 싶다. 물론 이는 이날 중심에 세운 <The Meridian Suite> 의 높은 완성도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기승전결 뚜렷한 레코드를 라이브로 연주할 때 기대하는 모든 것을 다 보여준 공연이었다.


글: 홍형진

사진: LG 아트센터
 

글쓴이

  • 스무 살엔 음악을 하겠다고 비뚤어졌고 서른 살엔 글을 쓰겠다고 비뚤어졌다.
    <문학사상> 소설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해 이런저런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음악 관련 글은 허핑턴포스트, 예술의전당, 서울시향 등에 주로 기고해왔다.
    순도 100% 마족인데 엄마도 마족인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