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흐와 마틴 루터가 억류 되었을 때
  •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태어난 것은 마틴루터 이후 140년이라는 꽤 긴 시간의 갭이 있지만, 바흐에게 있어서 하나님 다음으로 루터야말로 그가 평생을 독일 프로테스탄트교의 칸토르로 봉직을 하면서 그의 인생과, 철학, 음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었던 인물일 것입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있어서 공통된 평행적 운명의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바흐와 마틴 루터가 억류 되었을 때

 

음악칼럼

 

올해는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지 5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그의 음악이 종교개혁자 ‘마틴루터’의 영향권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태어난 것은 마틴루터 이후 140년이라는 꽤 긴 시간의 갭이 있지만, 바흐에게 있어서 하나님 다음으로 루터야말로 그가 평생을 독일 프로테스탄트교의 칸토르로 봉직을 하면서 그의 인생과, 철학, 음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었던 인물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 두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운명의 힘이 작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바흐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마틴루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있어서 공통된 평행적 운명의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1517년 로마카톨릭의 부패와 타락에 대하여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95개 조항의 대자보를 비텐베르그 대학에 붙였던 마틴루터는 ‘교회가 인간의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만이 인간의 죄를 사할수 있다’고 주장을 해서 종교개혁의 시작이 됩니다.

루터가 로마로부터의 소환에 응하지 않자 현지의 카톨릭교구에서는 루터를 파면해 버렸고, 마틴루터는 누구라도 그를 죽였을 때 죄를 묻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루터는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한 귀족의 도움으로 아이제나흐의 바르트부르크 성에 10개월간 숨어서 살게 됩니다.

 

성에 갇힌 신세로 꼼짝을 할 수 없었던 마틴루터는 라틴어로만 되어있던 당시의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작업을 합니다. 일부 성직자들만이 독점을 하고있던 지식(성서)은 권력이었고 돈이었습니다.

당시 성서 한 권의 가격은 지금의 돈으로 따진다면 집 한 채 가격과 맞먹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마틴루터가 ‘9월성서‘로 불리는 독일어 번역 성서를 저렴한 가격에 출판을 하자 초판 3000부가 즉시 소비됐으며 그 이후로 11년간 10만부 이상 85쇄를 찍어냈다고 합니다.

1717년 바이마르 시절의 요한세바스찬 바흐는 드레스덴에 가서 자신의 연주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바흐의 뛰어난 연주 솜씨에 껌뻑 넘어가 버렸고 그 궁정의 왕은 바흐에게 칭찬과 함께 하사금을 줍니다. (바흐가 받던 당시 연봉의 두배에 달하는 500탈러= 현재의 가치로3만 5천불 정도)

드레스덴에 다녀온 바흐는 다른 음악가들이 받는 높은 처우를 보고 와서 ‘내가 이러려고 바이마르에 궁정악장이 됐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드레스덴에 있었던 그 누구도 바흐보다 뛰어난 연주자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거기다 바흐와 마리아 바바라의 일곱 자식 중 여섯이 이 도시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니 박봉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바흐는 ‘그래!! 결심했어 이곳을 떠나는 거야!!!’ 하며 그의 고용주였던 빌헬름공작에게 사직 의사를 밝힙니다. 하지만 공작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조그만 편의점도 인수인계라는 것이 있는데 하물며 궁정악장이니 후임자를 뽑아서 업무 인계를 해줘야 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바흐는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라 줄기차게 졸라댔다고 합니다. 계속 쫓아다니며 ‘사표수리해 주세요 네? 네? 네?’ 하고 몇 날 며칠을 졸라대자, 참다못한 공작은 바흐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죄목은 ‘너무 귀찮게 자신의 면직을 요구한 죄’였습니다. 

11월 6일 감금된 바흐는 거진 한달을 감금당한 채로 있다가 12월 2일 불명예 퇴직이라는 통보를 받고 감옥에서 풀려납니다. 이 사건을 통해 보면, 바흐도 뭔가 다혈질이고 집요하고 고집불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달 가까운 시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바흐는 마틴루터와 같이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바흐는 ‘평균률 클라비어곡집 1권’을 완성해 낸 것이었죠. 감옥에서 쓴 그의 메모에는

“권태와 지루함 밖에는 없고 어떤 종류의 악기도 없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썼다” 라고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피아노의 구약성서‘로 불리기도 하는 바흐의 위대한 유산은 건반도 없는 감방에서 머릿속으로 그려낸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도소에서 소매치기 기술을 배워서 나오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대입검정고시를 패스하여 나오기도 합니다. 같은 환경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내는 것은 순전히 본인의 목표와 의지에 따른 것이지요.

바흐와 루터 그 두 사람이 폐쇄된 공간에 갇혀있으면서도 위대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원동력은 좌절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신앙에 기대어 종교적 신념과 창작의 의욕을 불태워낸 성실함, 천재성이 밑바탕된 결과일 것입니다.

또 한편으론, 지금과 같이 TV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는, 오로지 사색과 침묵만이 있던 시절 이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며칠 전 길고 긴 연휴기간동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군 내무반 침상에 늘어붙어 잠만 잤다”는 아들놈에게 이 글을 보내줘야겠습니다.

아니구나... 저부터 반성합니다..

 

 

글쓴이

  • 신문쟁이 7년, 홍보쟁이 5년, 광고쟁이 10년, 광고 문화마케팅회사, 대학에서 숟가락 얹는 중.